OJT기간의 홈스테이가 일주일이 지날때 즈음,
나는 '내 건강에 혹시 적신호가 오고있는건 아닐까?' 라는 기우에 사로잡혀 있었다.
기름으로 오장육부를 뒤덮어 기지개를 피면 등에 찐 살이 일주일만에 확인이 되고
위가 쓸려내려가는 듯한 느낌으로 소화는 배부른 소리라고 애써 합리화 하게됬다.
그저 시간이 지나 다시 배고파 음식을 집어넣는것으로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이건 꼭 홈스테이만의 결과라고 하기엔 좀 오류가 있긴 하다.
부모의 부재로 인한 마음의 허기짐을 합숙때 음식으로 해결하며 식탐이 애정결핍의 결과라는 해답을 확실히 얻을수 있었고
모로코의 생활 시작부터 스물스물 내 위는 누구에게 말할수 없던 고생이..... 결국 긴장속의 홈스테이에 터지고 말았다.
늘 사랑을 음식으로 보여주긴 했지만
먹는것으로 보답하는 2주일은 나에겐 절대 쉬운 관문이 아니였다.
결국 쌀밥이 먹고싶다고.. 한국인은 매일 빵을 먹고살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11시가 넘어서야 먹는 저녁이 힘들다고 손짓발짓으로 설명하는 경지에 이르러 버렸다.
그날 저녁 쌀로 만든 음식이 식탁에 올라왔다. 그들은 잘 먹지 않는, 맛없다 하는 쌀로 말이다.
안먹을 수가 없다. 감사히 애교와 함께 냠냠 먹으며 받은사랑에 보답한다.
'위야 홈스테이 끝나면 언니가 흰죽 줄게'
그래도 모로코에도 쌀을 구할수 있다는것이,. 시디무사 벤 알리에도 한곳이라도 파는곳이 있는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많이 먹지 못하는 날 위해 양조절도,,
쌀로 리조또와 흡사하게 만들어주고 예쁘게 고기완자로 장식도 하고..
모로코식 하리라와 수제 감자튀김까지.
맛있게 먹을 모습을 기대하며 만든 하스나(기관장님 며느리)를 생각하면
안먹을 수가 없다. 이거 만드는데 드는 시간..
나의 시간도 소중하듯 만드는 하스나의 시간도 소중하기에.
하지만 급기야 난 결국 드러 눕고 말았다.
비상약으로 한국에서 가져갔던 위염약을 들고가지 않아 계속 아파할 수 밖에 없었고
차곡차곡 쌓여갔던 통증은 열과 식은땀으로 대답해주었다.
끙끙 앓고 있는 날 위해.... 기관장님은.. 밤 12시에
흰 쌀죽을 해주셨다.......그것도 이쁘게 데코까지 해주시며...아..ㅡㅜ
감동으로 아픈 위를 부여잡고 어제와 오늘의 경계시간에 입에넣은 흰죽은 달고 달았다.
반도 못 먹었지만, 그사랑에 대한 감동인지 한결 편안해지는 속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날
식탁엔 흰죽에 빵과 커피와 우유와 잼이 같이 올라왔다.
같이 먹으라며.. 그리고 내가 괜찮다 할 때까지 흰죽은 식탁에 함께 했다.
이들은 상상 못하는 한국인의 식단을 어떻게라도 포함시켜 환영의 인사를 식탁에 말대신 표현해주는 사랑속 모로코인.
여전히 내 위는 아프고 적응할 리 없다. 태생부터 기름은 멀리하는 한국인 아니던가.
하지만.. 그들이 원해서 방문했다 하더라도
이방인은 이방인이다.
내가 이들의 식문화로 힘겨워하고 아파하는 것을 보며 나보다 더 힘들어하진 않았을까.?
음 ㅡ 하지만 또 식사를 하게 되면
갖은 애교와 어눌한 데리자를 총 동원해 시선을 분산시키고 '브닌(맛있어요)'이라 칭찬하며 천천히 꼭꼭 오래씹어 먹을 것이다.
이것도 지혜인듯. 나를 지키고 그들을 지킬 수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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