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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2012-14. from Maroc/Travel ■ Morocco

파리회상_또 가고싶은 파리(인상깊었던 투어)

내가 파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다.
오르세 미술관이 있어서. 그곳에는 고흐의 그림이 있어서.

 

맨 처음 가기 전에는 좋아했지만
막상 가보니 뭐 그저 그런 파리에 미련이 없었는데
이번에 다시 방문했던 파리는 나에겐 꼭 한번 다시 갈 곳이 되었다.

 

내가 고흐를 좋아하는 이유는 '가슴이 아파서'이다.
미술적 관념으로 찬란한 작품세계에 대한 존경심이기 이전에
나에게 고흐는 '가슴아픈 한 남자'이다.

 

 

빈센트 반 고흐.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에게 외면당했다.
그의 생일은 그가 본 적도 없는 형이 죽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날때부터 부모의 사랑에 결핍된 채,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여자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내가 고흐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 이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남자. 어머니에게서 조차 사랑받지 못했던 남자.
늘 사랑을 갈망했지만 할 줄몰랐고 받을 줄 몰랐을 것인 남자.

 

이 모든 갈망과 해소를 그림에 모두 승화시킨 남자.


사람들은 그를 미친화가, 정신병자라는 닉네임을 붙일지 모르지만
내생각은 좀 다르다.

 

아픔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고

늘 자신이 열망하는 삶을 위해 떠돌아다니며 화폭에 남긴 남자.
빈센트 반 고흐.

 

가장 솔직하게 자신만의 언어로 말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몰라주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그시대 여인이었다면 어쩜 난 그를 졸졸 쫒아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설령 그가 날 미치게 했을지라도.

 

무튼. 그래서 난 파리가 좋다. 고흐의 흔적이 구석구석 남겨져 있다는 파리.

 

전에 갔을때는 아ㅡ 여기가 거기구나 했었는데
이번에 '유로자전거나라 투어'가이드님의 열정적인 설명덕분에
난 다시 파리가 좋아졌다.

 

그럼.. 잊을만 할때쯤
오늘 다시 사진첩을 열어보며 회상했던
나의 짧은 파리 여행을 적어볼까 한다.

 

 

이곳에서 '유로 자전거나라 투어'가이드님을 만났다

비가 오는날 운치있는 파리. 그립다.

 

가이드님의 열정적인 설명을 들으며 먹었던

카페

프랑스에서 에스프레소를 시키면 '카페'

아메리카노는 '카페알롱제'

모로코에서는 '카후와'

모로코의 아메리카노도 '카페알롱제'

 

이 카페에서 우리는 '오르세 미술관 투어'강의를 한시간 가량 들었다

19세기를 회상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설명이었다.

 

 

1월 16일 나의 파리..

'자전거나라'가이드님을 통해 난 파리의 19세기로 들어가게 된다.

 

 

*오르세 미술관(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있는 미술관)

 

 

기차역으로 쓰였다던 오르세 미술관.

세느강이 보이고 루브르 박물관과 5분거리인 이곳은
1976년 미술관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지금도 19c 건축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유럽의 문화재 보존에 대한 자세는 가히 배울만 하다.

 


천장이 온통 유리이다. 따라서 자연의 빛을 조형요소로도 활용하고 있는 셈

이곳의 그림또한 빛을 이용한 그림인 인상주의 작품들이 존재한다.
건물과 작품이 한마음인 곳. 오르세 미술관.

 

19세기의 미술은
낭만주의 - 사실주의 - 인상주의 - 현대미술,입체파(피카소) 순으로 정리할 수 있다.

 

17c 초에 프랑스 아카데미는 살롱전을 개최하였는데
작품 전시방식이 벽에 빽빽히 벽돌을 쌓듯 가득하게 전시를 했었다.
살롱전에 수상한 작품들은 대부분 아카데미 졸업생들이었다.
이 살롱전에는 이들만의 규정이 있었는데

역사, 신화, 종교 이 3가지 범주를 벗어나면 탈락했다.
하여 이에 반발한 수많은 낙선 작가들이 낙선전을 개최하여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후 인상주의자들은 그들만의 전시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데,
그들의 전시스타일은 지금의 미술관의 스타일과 흡사하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미술사도 경제, 사회배경과 연결이 된다.
19세기에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새롭게 부를 축적한 중산층이 등장한 시기이다.
이로인해 소비문화가 생겨나고 여가를 즐기는 '부르주아'계급이 생겨나기도 했다.
또한 사진기의 발명으로 인해 화가들이 설자리가 점점 줄어들어갔다.
재능이 없는 화가들은 사진사로 전업했고

재능이 있는 화가들은 새로운 작품을 시도해야만 했다.


인상주의는 시대적 필요로 인한 진보성향의 젊은 화가들의 모임중 하나였다.

19세기에 튜브형 물감이 나오면서

화가들은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됬다.
또한 기차의 발명으로 인해 풍경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동방으로 갈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이때 일본 문화의 도입으로 인해

화가들은 작품에 또렷한 원색, 강한 색대비로 변화를 시도했다.

 

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사회의 움직임에 따른 그들만의 개혁이
이들에게는 작품 생활로서는 좀 더 유리하고

화가로서의 길을 장수하는 방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굳이 자세히 보지 않아도 느낌으로 여러가지 관점을 표현할 수 있는것은
그들이 지병을 앓고 있는 중에도 작품을 남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는지..
대부분의 화가들은소위말하는 직업병으로 눈이 멀거나 손이 마비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인상파화가의 '모네'

모네의 수련작품은 그의 눈으로 보이는 전부를 그렸다는 설도 있다.

뭐, 이건 그냥 개인적인 나의 생각이다.

 

'자전거나라'가이드님의 교수님보다 재밌고 자세한 설명 덕분에
난 마치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 설명하시는 것을 줄줄이 적어나갔다.
가이드님의 설명과 내가 알고있던 아주 쬐끔 알고있던것을 합해 정리하는 것은

여기까지로 한다.
나머지는 여행에 관심있으시면 그리고 파리를 좋아하신다면
이 투어 강력히 추천한다.(광고 아니다)

정말 감명깊게 하루를 19세기 여인으로 보낼수 있다고
자신있게 추천한다.

 

그럼.. 광고 아니라고 했지만 너무 뜻깊은 휴가를 보내 대놓고 광고한것을 바로잡아
이만 다시 휴가로 돌아가서

 

 

점심식사는 프랑스에 가면 꼭 먹어보라는 '엉트레코뜨'

프랑스 식민지 영향인지 모로코에서 레스토랑마다 이 엉트레코뜨 스테이크가 있다.

모로코도 맛있지만 본토맛 프랑스것도 맛있었다.

 

우리가 식사한 이 거리는 19세기 프랑스의 철학과 문학이 발달 되었던 장소라고 한다.

지식인인 듯 나도 19세기로 돌아가서 야곰야곰 스테이크를 썰어먹고 나와

 

오페라 극장 - 나폴레옹 3세 양식

프랑스 유명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가

나폴레옹에게 대놓고 아부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보면 지붕은 왕관을 형상화 하고있고

곳곳에 'N'이라고 써져있다.

그 시대의 좋다 하는 모든 양식은 다 혼합한

그야말로 나폴레옹 3세 양식

 

빠싸쥬

부르주아들이 돈쓰기 위해 찾은 그시대의 쇼핑거리.

 

19세기의 부자들이 이쁘게 단장한 옷들이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서

깨끗한 바닥과 천장은 온통 유리로 되어있는것이 진풍경.

 

물랑루즈

 

유로 자전거나라 가이드님이 들려주시는 '샹송'과 함께

샹송을 불렀던 가수의 생가도 구경하고

 

여러 예술가들의 뒷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며

19세기로 나도 함께 빠져들어가 보았던 시간.

 

이 얘기 저얘기를 들으면서

몽마르뜨 언덕으로 가서

고흐가 자주 갔었다던 커피숍도 가보고 화가들의 가난함을

재미있게 해석해주시면서 얘기해주시는 이야기들에 흠뻑 취해갈때쯤

서서히 해가 저물어 가고있었다.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예술가들의 흔적이 가득한 몽마르뜨 언덕.

자료를 찾아보니

로마점령시기인 서기 250년경 생 드니 성자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후 잘려나간 자신의 머리를 들고 파리 북부의 생드니 성당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고 하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화가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는 테르트르 광장은 한때는 처형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샤크레쾨르 성당

프랑스 성녀인 잔다르크가 있는 성당.

전에 이곳에 갔을땐 미사를 드리지 않았는데

이번에 방문했을땐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신기한 경험.

 

샤크레쾨르는 ‘성스러운 마음‘이라는 뜻으로

1870년 보불전쟁의 패배와 파리코뮌으로

처절하게 암담했던 당시의 파리분위기를 상쇄시키기 위해

20세기 파리시민들이 주머니를 털어 기부한 돈으로 세워졌다.

1877년 착공하여 약 4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에도 파리시민에게 가장 각별한 카톨릭성당으로 남아있다.

-유로 바이크

 

 

국물요리가 없는 프랑스의 겨울철 감기예방 음식

비타민이 엄청 풍부하데서 먹어보았는데

와인을 따뜻하게 데운거라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근데 먹고나니 몸이 정말 따뜻해졌었다 ㅎㅎ

 

따뜻한 몸으로 파리의 제일 명소 에펠탑으로 향한 후

마지막 설명과 함께 그날 가이드 투어는 끝이 났다.

 

그리고 난 다짐했다.

또 다시 오리라.

그리고 이 투어 또 이용 하리라.

감명깊은 설명과 함께 마치 나도 19세기 여인인듯한 느낌마저 들었던 하루

억센 비와 함께 우리를 인도해주신 가이드님이

빛나보였던

그리고 나의 기억속에 있었던 그저 그런 파리가

다시 꼭 와야 할 파리로 바뀌었던 날.

 

그리고 내사랑 고흐의 자취를 더 자세히 느낄 수 있었던 하루.

 

가이드 투어가 끝나고 투어에서 만난 언니들과 함께 바또무슈를 타러갔다.

여행이 맺어준 인연.

그리고 새롭게 찾아온 향수.

그냥 가는길에 들린 파리가

나의 워너비 나라가 되었던 날.

 

다음날 찾은 루브르 박물관은 들어가지 않았다 ㅋㅋㅋ 시간이 없었으므로 ㅎㅎ

나중에 다시 찾아 꼭 투어 또 할테다.

 

마지막으로

비오는 와중에도 열심히 설명해주신 가이드님 감사합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생각이 바뀌고 시각이 바뀌었던 날.

 

가이드님의 말씀중 가장 뇌리에 박혔던

하늘을 보는것.

 

그날 파리의 하늘은 구름이 세차게 지나갔었다.

내일 모로코의 하늘은 어떨지.

지금은 비가 세차게 오지만

내일은 맑은 하늘을 기대해 본다.

 

더불어 나 또한 또 다른 감사를 하기를 기대해 본다.

 

파리. 기다려 또 간다.